누가 산책로 물어보면 늘 추천하는 수월봉


온 가족이 다 같이 수월봉으로 산책을 나갔다. 수월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일몰을 볼 수 있다는 장소이다. 


 처음 여기로 산책을 왔을 때 그 압도적인 비주얼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무려 1만 8000년 전 폭발하면서 쌓인 화산재가 덤덤하게 자신의 나이를 드러내고, 그 오랜 세월 묵묵히 그 지층을 깍아내려온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러면서도 고요하다. 


 관광객에게 인기가 없는지 오가는 사람도 없어서 마치 이곳이 우리 집 전용 산책로 인 것 만 같았다. 이곳에서는 애들이 크게 고함을 지르고 뛰어다녀도 괜찮다. 아무리 크게 소리를 내도 이 거대한 자연에 그냥 파묻혀 버린다. 애들 시끄럽다고 불평할 사람도 없고, 혹은 애들 귀엽다면서 웃어줄 사람도 없다. 그냥 한없이 조용하고 시원한 바람만 우리를 반겨줄 뿐이다. 


 나는 원래 사람 많은 곳을 좋아했는데, 제주도 시골로 이주한 이후 반강제적으로 한적함에 내던져졌다. 지금 사는 곳은 제주도 사람들도 잘 모르는 시골 마을인데, 다들 농사일에 바빠서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운 동네다. 난 금세 이런 한적함에 익숙해졌다. 요즘은 한 4~5명만 모여 있는 곳으로 가도 사람이 많다고 느끼고 왠지 불편해진다. 그런 나에게 이 수월봉은 안식처 같은 느낌마저 준다. 


 혹시나 애들이 다칠까봐 애들만 지켜보던 아내가 입을 연다. 


 "우리 애들한테는 여기가 고향이겠지?"


 고향이라……. 

 나한테 고향을 물어보면 보통 마산이라고 말한다. 호적상 고향은 진주이고, 아버지 직업 덕분에 진주, 삼천포, 화계장터, 하동 등을 떠돌면서 자랐다. 마산에서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 건 9살부터이다. 마산에서도 몇 번 이사를 해서 어릴 때 고향 친구라고 부를 친구는 몇 없다. 심지어 지금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도 마산은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그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마 어릴 때 기억이 가장 많이 남은 곳이 마산이어서 그런 것 같다. 물론 어릴 때 뛰어놀던 지리산이나 화계장터, 진주의 시장들도 떠오르지만 특히 기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 마산이다. 철도 위를 따라 걷다가 기차 오는 소리가 들리면 황급히 옆으로 피해야 했던 기찻길, 고불고불 이어지던 골목길, 비릿한 어시장의 냄새, 용돈이 모이는 족족 달려갔던 시내의 대형 서점, 밤에 창밖으로 보이던 화려한 시내의 불빛들…….


 특히 제일 강렬한 기억은 학교에 걸어갈 때 내려다보이던 마산 앞 바다다. 딱 요맘때 일거다. 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면 밤새 무학산에서 차갑게 식은 나무 냄새의 공기가 폐 가득 들어온다. 그리고 조금만 걸어가면 마산 앞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그 바다에 햇빛이 비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힘들던 군대 시절에 가끔 그 광경을 떠올리며 힘을 내곤 했었다. 


 그 마산 앞 바다와 제주의 바다가 묘하게 오버랩 된다. 우리 애들은 나중에 고향을 떠올리면 이 제주 바다를 떠올리게 될까. 수월봉에 엄마 아빠와 같이 나와서 웃고 떠드는 지금 이 순간이 기억날까. 


 첫째는 그나마 수원에 대한 기억이라도 조금 남아있지만 1살 때 제주도로 넘어온 둘째는 온전히 제주도에서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다. 참 궁금하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커서 누군가 고향을 물어보면 고향을 수원이라고 답할까 제주도라고 답할까. 


 언제까지 이곳에서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애들이 나중에 힘들고 지칠 때 떠올리기만 해도 힘이 나는 그런 좋은 기억들이 많이 남았으면 좋겠다. 


신도리 앞 바다..;; 진짜 동네 앞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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